얼마 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대담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2026. 10. 17. 「Democracy in the Age of AI」 — 발언 일부 번역)

 

OpenAI나 Anthropic 같은 회사에는 AI 치료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AI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편향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는 미래에 유망한 직업을 찾는다면 AI 치료사를 생각해 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한 맥락에서 스키마, 대상표상과 같은 상담심리학적 개념들이 연상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들이지요.

 

그렇다면 AI가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방식을 탐색하는 데도 상담심리학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상담사가 상담의 대상을 인간에서 AI로 바꾸는 식의 업종 전환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금방 아차! 싶었습니다.

 

스키마나 대상표상도 결국 지식입니다. AI를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는 있겠지만, AI가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인간이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도 도움을 주는 시대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담심리학자가 필요해지는 것은 아니겠구나. 자문 정도는 할 수 있으려나?

 

AI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나 학습 과정까지 이해하려면 심리학적 개념을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모델의 내부 구조와 학습 과정을 다룰 수 있는 기술적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그렇다면 상담심리학자가 엔지니어링을 배우는 것보다, 심리학을 공부한 엔지니어가 이 일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는 한국어 답변 품질이 지금만 못해서 영어로 문답했던 시기(2023년 2월)

 

이렇게 미래 유망직종에서 멀어진 나(이력서도 안냈지만, 셀프 서류 탈락)를 보며,

처음 ChatGPT가 나왔을 때

"네가 심리상담을 대체할 수 있겠니?"라고 질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놈이 아주 간신배스럽게 '그럴리가요. 저는 들어주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규칙 기반 챗봇인걸요. 개인이 처한 고유한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까진 어찌 못합니다~ 어찌 감히 제가 상담사님을 대체하겠습니까?'하고 입 안의 혀처럼 굴던 때가 있었는데...

 

어쩌면 우리 인류는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 아니었을까(2026년 10월)

 

지금 다시 읽어보라니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고 저런 구닥다리 답변, 흥미롭군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내 AI..

믿을 놈(AI) 하나 없다...

 

그래도 "누군가 나에게 '상담도 이제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요즘 사람들이 외롭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그래요.
외로움은 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온기가 필요해요.
상담도 그래요.

득이 되는 만남이라서 만나는 게 아니고
그냥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관계가 줄어들수록 상담이 더욱 필요해진다고 봐요.

 

 

 

피지컬 AI에 휴머노이드가 나오는 세상에 현재의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아직은 설명할 수 있는 저의 관점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이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그 누구에게도 답을 얻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인데도, 새삼 외롭게 느껴집니다.

저도 다음 주에 한국상담심리학회 1급 필기를 치러 갑니다.

왜 수험 공부는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걸까요?

수험 공부에 대한 지루함 그리고 K수험생활에 대한 반발감을 한 스푼 넣어서 모의고사를 만들었습니다.

 

만들면서 무슨 생각하면서 만들었나 공유 드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딴 짓의 연장으로 제작 후기도 씁니다.

저를 노출하는 것이 아직은 부끄럽지만 꼭 말하고 싶네요.

저는 학부 수업에서 실존주의를 들을 때 로저스가 참 멋있었고 펄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상담이라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도 이론가들처럼 스스로와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나에게 진솔하고 타인과 연결되어 사는 삶.

 

물론, 현생을 살다보면 그게 참 어렵기도 하고 가끔은 부끄러울 일도 참 많습니다.

일에 치여 내담자를 반기지 못한 순간, 자기연민에 빠져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순간... 뭐 셀 수 없이 많지요.

옛날 이론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중 대표적인 때가 바로 자격 취득을 위해 수험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자격 취득을 위한 요약본과 참고서는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걸까요?

내 안의 지향점과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괴로워 딴짓을 하다가도,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싶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상담을 안 좋아하나?'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학회의 수련 체계를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존중하고 최소한의 검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지합니다.

 

다만,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본질을 놓치고 있진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봤습니다.

(이게 다 공부하기 싫어서...)

 

 

제게 상담은 여전히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수험 공부는 참 멋이 없어요.

거칠지만, 삶을 살아내는 그 옛날 이론가들의 모습과 수험 공부는 좀 괴리가 있어요.

 

그래서 좀 이상할 지 모르지만, 혼자서 이상한 고집을 부립니다.

참고서 따위! 참고하지 않는다!

《On Becoming a Person》 같은 좋은 책을 읽다보면 문제는 저절로 다 풀릴거야!!

그런 대책 없는 허세와, 그럼에도 현실적인 합격을 위해선 효율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성 사이에서 극적으로 타협해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 프로그램입니다.

 

 

때려죽여도 K수험생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대쪽 같은 독립 운동가인 나와

필기는 빨리 합격하고 싶은 현실을 사는 나

 

아무튼 귀찮으니까 빨리 공부 끝내고 허세를 부리고 싶네요.

(이것이 이론가, 대가들의 향기인가!)

이 프로그램이 저처럼 현생이 버겁고 귀찮고 자기 추구미와 거리가 있는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들 합격하세요!

 

한 해 총평 : 부지런히 움직였던 한 해 참으로 고생했습니다.

 

올해의 정량 성과

 

자격 취득 부분 한국상담학회 전문상담사 1급 취득
수련 부분 개인상담 수퍼비전 11회
심리검사 수퍼비전 12회
집단상담 참여 4회
공개사례발표 2회
교육분석 26회
개인상담 부분 사례 20케이스, 240시간
집단상담 부분 3개 집단 운영(T그룹)
지도 부분 수퍼비전 실시 23회
(개인상담 및 심리검사)

 

올해의 정성 성과

 

수련 부분 수퍼비전 받은 수퍼바이저수 10명
상담 부분 1) 드랍 사례 X. 조기 종결 1 케이스
2) 올해의 최장 케이스 38회기
지도 부분 사례 공유 시간을 제외한 수퍼비전 16회
개인사 부분 1) 둘째 출산
2) 집 이사
3) 박사 과정 입학

 
 
1. 올해 최고의 정량 성과는 단연 한국상담학회 전문상담사 1급 취득(이게 되네?)

육아로 면접시험을 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취득이 가능했던 이유는

1) 가성비가 가장 높은 방식의 준비 방법(스터디 X, 암기 최소화, AI면접관)
2) 상담 케이스를 많이 받던 순간의 기억들(외우지 않아도 사례를 그릴 수 있었다)


준비된 대답을 재생하기보다는 사례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놓았던 것이 플러스였다고 생각합니다.
사후 해석이지만, 제가 느낀 면접관의 의도는 임상적으로 숙달된 전문가, 지도가 가능한 전문가인지 확인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학회의 입장은 알 수가 없습니다.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2. 수련 > 상담

  • 객원 근무하던 작년(24')과 비교하면 주 당 진행 케이스 비율 (주 18 케이스 → 주 5 케이스)로 72%가량 저조하였습니다.
  • 이유는 풀타임 근무, 출산&육아, 박사 과정 등 케이스를 더 받아서는 안되는 환경이었음에도 최소 5케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올해 드랍이 없었다는 점, 조기 종결(내담자 환경 변화로 인한 합의 종결) 1건은 괄목할 만한 성과입니다. 내년도에도 같은 폼을 유지하되, 내실 있는 성장을 위해 더 많은 내담자를 만나길 바랍니다.

3. 상담계의 바람의 파이터

  • 전국을 돌며 도장 깨기를 하던 최배달처럼 전국에 포진한 수퍼바이저들을 만나고 왔습니다(깨고 온 건 아닙니다).
  • 1급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수퍼바이저들의 피드백을 보다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최대한 다른 배경(초심 수퍼바이저~대가, 성별, 연령, 주 이론, 대상, 임상적 배경)을 가진 선생님들께 배움을 청했습니다.
  • 향후 몇 년간은 계속 바람의 파이터처럼 재야의 고수를 만나고 배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4. 믿을 것은 반복 숙달 뿐

  • 기술자에게는 기교도 중요하지만, 신뢰도와 타당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자의 의도 안에서 내담자의 호소 문제에 맞게 개입했는지, 그러한 세션이 계속 반복적으로 누적되는지가 기술자로서 상담자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나를 배우면 끝까지 써먹어보려고 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 올해는 비구조화 집단상담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해였습니다. 이전까지 비구조화 집단, 반구조화 집단에만 익숙했다면, 올해는 얄롬의 안내(최신집단정신치료의 실제 6판)에 따라 대가의 비구조화 집단에도 참여해 보고 반복해서 진행해 볼 수 있었습니다.

 
 
코멘트. 극한의 퍼포먼스를 발휘했던 2025년이었습니다. 다음 해에는 소진을 방지하며, 상담 실무에 더 힘을 쏟아 임상 경험을 더 보강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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